지난 1년 반 ‘지정기부제’, 누가 성공했고 누가 실패했나?

 “사람이 보이면 성공하고, 건물만 보이면 실패한다.”는 단순 명제 현실로

(사진 설명 :  2024년 마지막 소아청소년과가 문을 닫은 후, 다시 개원해 1년을 맞은 영암군 고향사랑소아청소년과가 ‘지역 아이 주치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영암군(c))













2024년 1월, 21대 국회 임시회 마지막 본회의에서 「고향사랑 기부금에 관한 법률」개정안이 극적으로 통과되며 고향사랑기부제는 중요한 분기점을 맞았다. 기부자가 기부금의 사용처를 직접 지정할 수 있는 ‘지정기부제’가 새롭게 도입된 것이다. 이후 같은 해 6월 4일, 지정기부제 시행과 함께 고향사랑기부제는 사실상 시즌2에 돌입했다.

지정기부 시행 71일 만에 목표액 100%를 가장 먼저 달성한 지자체는 충남 청양군이었다. 인구 3만 명의 작은 농촌이지만 ‘정산 초·중·고 탁구부 대회출전비 지원사업’이라는 생활밀착형 사업은 전국 유망 학생선수와 학부모까지 청양군에 전입을 고민하게 만들 만큼 강한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이 사업은 이후 지정기부 성공모델의 상징이 됐다.

1년 반이 지난 지금, 지정기부제는 지자체의 기획 역량에 따라 극명하게 엇갈린 성적표를 내놓고 있다. 주민의 삶에 스며드는 사업은 기부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높은 모금률로 이어졌다. 충북 청주시의 ‘찾아가는 동물의료 서비스’는 모금률 100%를 달성했다. 충남 당진시의 폭우피해 복구(99.27%), 전북 군산시의 다자녀 차량 무료렌탈(93.51%), 전남 영암군의 소아청소년과 운영(82.14%) 등도 높은 호응을 얻었다.

(사진 설명 : 영암군의 소아청소년들은 화·목요일 영암읍 영암군보건소, 월·수·금요일 삼호읍 삼호보건지소에서 고향사랑기부금 덕분에 1,100원의 부담 없는 비용으로 전문의의 진료를 받게 되는 지역 공공의료의 새장을 열었다. 지난 8월 개원 1년만에 총 2,268명이 진료를 받아 영암군 소아청소년 3명 중 1명꼴로 혜택을 받았다. 영암군(c))













공통점은 분명하다. 기부자가 상상할 수 있는 변화, 즉 “누군가에게 지금 꼭 필요한 것”이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대형 인프라 구축이나 건설 중심의 사업은 혹독한 민심의 심판을 받았다. 전남 신안군의 ‘여객선 건조사업’은 목표액 50억 원 가운데 모금률 0.05%에 그쳤고, 전남 고흥군의 ‘천경자 기념관 조성’은 0.39%, 충남 보령시의 ‘고향의 정원 조성’은 1.65%에 불과하다. 기부자는 이렇게 되묻는다.

“내가 보낸 고향사랑기부금 10만 원이 저 거대한 사업에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예산 규모가 곧 성과’라는 행정의 오랜 관행은, 기부자가 주체가 되는 이 제도 앞에서 더 이상 설득력이 없다. 고향사랑기부제의 성패는 결국 사람에게 얼마나 가까이 다가가느냐에 의해 갈린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일부에서는 “홍보가 부족해서”라는 변명을 내놓지만 본질을 외면한 해석일 뿐이다. 좋은 사업은 설명하지 않아도 기부자가 먼저 알아보고 찾아낸다. 반대로 저조한 사업일수록 “왜 이 사업이 고향사랑기부금으로 수행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답을 내놓지 못했다. 주민 없는 기획, 스토리 없는 사업은 결국 차가운 외면으로 이어졌다.

충청권 사례만 보아도 뚜렷하다. 공주·당진·서천은 재난복구와 청년·취약계층 지원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했지만, 같은 충남권 보령시는 개발 위주 사업에 매달리다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같은 제도, 같은 지역이라도 주민을 중심에 둔 곳은 성과를 냈고, 건물 뒤에 숨은 곳은 실패했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지정기부제의 핵심은 결국 지역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지역 사람’을 지키는 것이다. 기부자는 변화된 삶을 원한다. 어르신의 수술 한 번, 아이의 밥 한끼, 청년의 일자리, 재난 피해 가정의 복구처럼, 뚜렷한 결과를 보고 싶어 한다. 그 기대가 현실이 되는 순간, 지정기부제는 비로소 제대로 작동한다.

지방소멸이라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고향사랑기부금은 각 지자체를 향한 어쩌면 마지막 손길이 될지 모른다. 고향사랑기부제 시행 3년 차의 성적표가 말해주는 결론은 명확하다.

“사람이 보이면 성공하고, 건물만 보이면 실패한다.”

지방행정의 시선이 주민에게 다가가는 곳에서만 이 제도는 성공할 수 있다. 기부자의 마음을 진심으로 움직인 지자체만이, 소멸의 벼랑 끝에서 극적인 탈출구를 찾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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